기억하고 싶은 잡담

16mm 렌즈같은 세상

빵도 2024. 2. 17. 13:34

내가 가지고 있는 소소한 취미 중의 하나는 조그마한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는 것이다.  
요즘에 많이 사용하는 휴대폰이나 일반 디카와는 달리 렌즈 교환식 카메라이다 보니, 여느 카메라를 취미로 가진 사람들과 같이 처음에는 번들 렌즈로 촬영하다가 어느 덧 이것저것 렌즈를 하나씩 구매하게 되고 과연 어느 렌즈로 어떻게 찍는게 좋은지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그동안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내가 16mm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번들렌즈가 아닌 여러 렌즈들을 사용하여 사진을 찍게 되면 3~4가지 타입의 렌즈들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첫번째는 16mm 광각, 이 렌즈는 넓은 영역의 배경을 특별한 피사체를 집중하지 않고 찍을 때 많이 사용하게 된다. 즉 풍경이나 배경을 찍을 때 많이 사용하는 렌즈이다.
그 다음은 보통 카페 렌즈라고 불리는 35mm, 이 렌즈는 보통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 한 2~3m 떨어져 있는 특정 피사체를 찍을 때 많이 사용할 때 좋다. 한마디로 사람을 찍기 가장 좋은 렌즈 중의 하나이다. 이 외에는 50mm 렌즈, 이것 역시 특정 피사체를 찍을 때 많이 사용하지만 보통 가까운 거리에 있는 물건을 찍을 때 즉, 접사 사진을 찍을 때 많이 사용하게 되는 렌즈이다.
마지막으로는 망원 렌즈군, 보통 50~250mm 사이의 렌즈들로 멀리 떨어져 있는 특정 피사체를 찍고 싶을 때 많이 사용하게 되는 렌즈들이다.

16mm 렌즈로 찍은 사진


35mm 렌즈로 찍은 사진

즉, 내가 16mm 사진을 많이 찍었다는 것은 나는 주로 특정 피사체를 집중해서 찍기보다는 전체적인 풍경 사진을 많이 찍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풍경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내가 16mm 렌즈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나 자체가 세상을 그렇게 보는 것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즉, 특정 피사체를 주시하기 보다는 그 누구도 주시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배경과 풍경으로 보는 시선 말이다.  

현대는 개인주의 사회라고 한다. 즉, 타인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타인이 나의 삶에 끼어들고 나를 주시하는 것이 불편해진 시대이다.
물론 과거에도 누군가를 피사체를 삼아서 찍는 것은 나름의 양해와 용기와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을 찍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었고, 조심스럽게 요청하면 수줍어 하시지만 기꺼이 자신을 피사체로 제공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는 그 행위 자체도 금기시 되어 가고 있다. 사진만이 아니라 개인의 시선마저도 불편하고 누군가를 조용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불편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35mm 렌즈처럼 누군가를 자세히 관찰하고 보는 것 자체를 피하고 16mm 광각 렌즈처럼 특정 피사체가 아닌 전체적인 배경을 보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35mm 렌즈를 들고 무엇가를 찍지만, 그것은 결국 서로 불편하지 않은 사물일 경우가 많다. 이제는 친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을 피사체로 찍는 것은 나름의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모두가 누군가의 소중한 대상이 되는 것보다는 그저 전체적인 풍경의 배경이 되는 것이 익숙해진 세상, 16mm 광각 렌즈 같은 세상이 된 것 같다.
하지만 가끔은 16mm 렌즈의 배경이 아니라 35mm 렌즈로 , 좀 더 사물을 자세히 보면, 그 사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한가지 렌즈로 사진을 찍지 않듯이, 이 세상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한가지 시선과 크기로 보는 것이 아닐 것이다.
10년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다가, 갑자기 내 어깨를 두둘기며 수줍어하며 자신을 찍어 달라고 요청한 한 외국인의 사진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