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잡담

청년의 나이에 대한 단상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빵도 2024. 1. 7. 14:38


최근 순천시에 나온 포스터에 청년의 나이를 18세에서 45세로 정의하는 포스터가 나왔다.
물론 최근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나이 어린 사람이 점점 줄어드어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지방을 사정을 고려하여 나온 포스터 일수도 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어릴 때와 현재의 나이에 대한 개념이 점점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내가 어렸을 때 흔히 말하는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그 이전 70년대에서는 청년이라는 것은 거의 10대 후반에서 20대에 한정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30대 정도 되면 이미 결혼을 한 것이 당연한 나이였고, 아이를 둘이나 셋정도는 있는 나이였으며, 한 집안에서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써 아버지와 어머니로써의 이미지가 강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20대, 심지어 20대 후반도 무엇인가 아직 어른이 아닌 사회에 진입하는 초년생의 의미가 강해졌다. 대학과 학업, 그리고 취직이라는 사회의 높은 진입 장벽에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입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럼으로써 결혼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시기도 늦어지면서 진정한 가족과 가장이 되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이제는 30대 후반이 되어서도 가정을 이루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 의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건강한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유지할 수 있는 나이도 길어지고, 가정의 이루는 나이가 늦어지고 후속 세대의 유입도 급격히 길어지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물러줄 사람이 없어서 억지로 청년의 일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일례로 교회에서는 젊은 세대의 급격한 감소로 20년 째 청년부라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발생하고 있다. 또다른 유머로 지금은 45세지만, 내년에는 46세가 되고, 그 이후에는 47세 즉 영원한 청년으로 살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결국 현재 발생하고 있는 청년 나이층의 급격한 증가는 청년층에서 장년층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지연과 후속 세대의 감소, 그리고 상대적으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기간의 증가로 인하여 나타난 사회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현상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빠르게 변화한 것에 비하며 다시 원대래도, 아니 완화시키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다시는 원대래로 돌아가지 못하고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여 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향후에는 큰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노동력이 이전보다 많이 귀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귀함이란, 단순한 비용이 아닐 것이다. 사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사람이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일할 사람은 항상 있었고, 문제는 그 노동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줄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하지만, 미래에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없는, 진짜 사람 자체가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할 사람을 찾을 수가 없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는 그것을 대신하기 위한 산업이 발전할 것이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지혜와 인내심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급하다고 비싼 돈을 주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질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듯, 기존의 단일 민족에서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서 현재도 일부 문제가 되고 있는 외부에서의 유입에 대한 불안감과 거부감, 그리고 충돌 등에 익숙해지고 배려해야할 것이다. 이런 변화에 거부감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것은 싫다고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현재 우리사회가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의 커다란 파도일 것이다.

물론 나도 이런 변화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많고, 그 과정을 극복하는 과정에 많은 고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인구 증가에 따라 항상 성장하던 우리 사회가 어쩌면 인구 감소에 따른 저성장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정부도 사회도 많은 의견을 내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서로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변화라는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